날씨 : 여름으로 넘어갈 것 같았지만 나오자마자 나의 앞머리를 툭치는 바람과 함께 햇빛 하나 없는 날씨
토요일 오후, 숙제를 하고 나오니 동생이 아빠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물을 마시며 쳐다봤는데 동생이 아빠와 요즘 푹 빠져있는 바둑과 오목을 하고 있었다. 급관심이 생긴 나는 동생에게 “우아 이거 뭐야 나도 할래 비켜”라고 했다. 동생은 “아 나 하고 있잖아” 라며 내가 오목을 할 줄 아냐며 나를 비꼬는 듯이 말했다. 나는 시무룩해져서 조용히 구경만 했다. 그때 아빠가 같이 하자고 하셔서 나는 마냥 신난 개처럼 웃으며 아빠 앞자리로 갔다.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인생 첫 오목을 했다. 근데 역시는 역시다. 30초 컷으로 졌다. 뭐 난 처음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하고 있는데 이 도움 안 되는 동생이 나보고 “ㅋ 바보”라고 했다. 한 번이면 됐지.. 틈만 나면 나보고 바보라고 했다. 열 받은 나는 하루 종일 엄마와 하고 동생과 하고 아빠와 했다. 근데 내가 너무 못해서 이젠 모두 나한테 바보라고 했다. 진짜 제대로 열 받고 킹 받고 다한 나는 죽도록 연습했다. 한 30번은 진 것 같다. 손에 땀이 엄청났다. 근데 이 동생이 나를 만만하게 생각했는지 나보고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이번엔 반드시 이겨 주겠어’라는 생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했다. 누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나 수십 번 연습하고 다 진 끝에 동생을 가볍게 이겨버렸다. 나는 게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ㅋ 바보”라며 비웃었다. 이땐 내가 다 이겨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잔뜩 약 오른 동생이 나를 보며 “씩 씩 다시!”라고 했다. 우린 또 했다. 내가 진짜 잘하는 건지 착각할 정도로 동생이 너무 못했다. 바둑알을 몇 번 안 뒀는데 이겼다. 그냥 동생이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잘하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엄마와 했다. 왠지 엄마랑 하니까 물이 넘쳐흐르듯이 땀이 넘쳐흘렀다. 손을 씻어도 땀이 났다. 5판을 했는데 내가 2판 이기고 엄마가 3판이 겼다. 내가 지긴 했지만 난 생각한 것보다 잘했다. 왜냐하면 전에는 이길 틈이 안 보였는데 이번엔 엄마가 살짝? 당황한 것 같았다. 드디어 바보 탈출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지금 내 기세를 보면 가장 잘하는 아빠도 이길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저녁시간이긴 했지만 아직 저녁 먹기 전이라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바로 게임을 했다. 아빠와 나는 6시 30분에 시작했다. 땀이 뻘뻘 나는 손을 진정? 시키며 바둑알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탁.. 탁 묘한 긴장감이 돌며 들리는 소리라곤 바둑알 소리밖에 안 들렸다. 진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40도가 넘는 온도인 것 같이 머리가 너무 뜨거웠다. 머리가 아프던 손에 땀이 나던 나의 모든 신경은 오목에 집중되어 아빠가 어떻게 공격을 할지 나의 모든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계속 공격하고 막고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나는 공부를 할 때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으로 오목에만 집중했다. 이로부터 30분 뒤 7시가 되었고 엄마와 동생은 밥 좀 먹자며 무승부로 끝내라고 했다. 하지만 게임은 승패가 있어야 하는 법! 나는 끝까지 집중하고 또 집중해 머리를 굴렸다. 마침내, 나의 탁.. 바둑알 소리와 함께 내가 오목을 만들었다. 나는 엄청난 기쁨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나의 굴욕 “바보”라는 단어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의 얼굴엔 드디어 미소가 폈고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오목 생각만 났다. 그때의 심정은 나라를 구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드디어 바보 탈출이다!!!!!!!”라는 말과 함께 나의 행복한 주말을 마무리했다.
시
동생이 왔다 동생이 왔다 이제 나의 자유는 끝나 버렸다 동생이 왔다 동생이 왔다 집안 곳곳 시끄러운 소리만 들린다 게임하자 제발 누나 게임하자 제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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